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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불국사
    『구름을 마시고 토한다』는 토함산(745m)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불국사와 석굴암은 찬란한 신라 불교문화의 핵심으로 1,440년 전 신라 법흥왕 22년에 그 어머니 뜻에 따라 나라의 안정과 백성의 평안을 위하여 세워졌으며, 그 후 신라 경덕왕 (742-764)때 재상 김대성이 다시 지어 절의 면모을 새롭게 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건물은 물론 값진 보물들이 거의 불에 타거나 약탈되었다. 1920년 이전에는 일부 건물과 탑만이 퇴락한 채 남아 있었으나, 지속적인 원형복구 및 보수로 국보 7점을 간직한 오늘날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불국사에서 산등성이를 타고 약 3km (포장도로 석굴로는 9km)정도 올라가면 동양 제일의 걸작으로 알려진 여래좌상의 본존불이 동해를 마주 바라보고 있는 유명한 석굴암이 있다. 불국사.석굴암은 1995년 12월 6일 해인사 장경판전과 종묘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공식 등재되어 국제적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자료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

  • / 석굴암
    석굴암은 경주시 토함산 정상 가까이에 자리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석굴 사원이다. 화강암을 이용해 만든 인공석굴로, 신라 불교예술의 전성기에 이룩한 걸작품으로 손꼽힌다. 통일신라 혜공왕 10년에 완성된 석굴암은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 불렀다. 신라의 귀족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석굴암은 사실적인 표현과 원숙한 조각 기법이 돋보이며, 내부공간에 본존불을 중심으로 보살상, 제자상 등 총 38구의 불상이 조각되어 있다. 석굴암 석굴은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종합적인 결정체이다. 1천 년의 역사를 지닌 석굴암의 자연 친화적인 온, 습도 조절 비결을 현대 과학기술로 아직 풀지 못할 정도로 신비롭다. 현재 항온, 항습의 문제가 우려되어 1976년부터 유리벽을 통한 외부관람만 가능하다. 석굴암에 가려면 주차장에 차를 두고, 고즈넉한 산길을 따라 20여분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수풀이 우거진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걷기에 좋다. 특히 석굴암 해돋이는 장관으로 소문이 나 있다.

    자료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

  • / 첨성대
    성대는 화강암을 사용한 석조 건축물로, 기단 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자 돌을 2단으로 쌓아 동서남북의 방위를 가리키는 기준으로 삼았다. 높이가 약 9m로, 현존하는 고려와 조선의 천문대 높이가 2~4m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규모가 훨씬 크다. 음력으로 1년을 의미하는 362개의 돌을 사용했고, 기본 별자리 수와 같은 28층으로 단을 쌓았다. 창문을 기준으로 아래, 위를 각각 12단으로 쌓았는데 이는 24절기를 의미한다. 첨성대가 1천4백년 가까운 세월을 견뎌온 것은 창문 아래 안쪽을 막돌로 채우고, 기초 공사를 탄탄히 했기 때문이다. 현재 동북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으나 거의 원형형태를 간직하고 있으며, 해가 진 후 조명에 비친 첨성대의 고풍스럽고 우아한 자태도 볼 만하다.

    자료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

  • / 안압지
    경주 동궁과 월지는 신라 왕궁의 별궁터이다.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신라 경순왕이 견훤의 침입을 받은 뒤, 931년에 고려 태조 왕건을 초청하여 위급한 상황을 호소하며 잔치를 베풀었던 곳이기도 하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문무왕 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진다. 일제강점기에 철도가 지나가는 등 많은 훼손을 입었던 임해전 터의 못 주변에는 1975년 준설을 겸한 발굴조사에서 회랑지를 비롯해서 크고 작은 건물터 26곳이 확인되었다. 그 중 1980년에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곳을 포함하여, 신라 건물터로 보이는 3곳과 월지를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임해전은 별궁에 속해 있던 건물이지만 그 비중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이며, 월지는 신라 원지(苑池)를 대표하는 유적으로서 연못 가장자리에 굴곡을 주어 어느곳에서 바라보아도 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올 수 없게 만들었다. 이는 좁은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느낄 수 있도록 고안한 것으로 신라인들의 예지가 돋보인다.

    자료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

  • / 보문관광단지
    보문호를 중심으로 하는 보문관광단지는 주변지역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더불어 고급호텔과 콘도, 온천, 골프장, 야외공연장, 놀이시설 등 각종 문화레저시설을 두루 갖춘 국제적인 관광단지이다. 1971년, 경주종합개발계획사업의 일환으로 종합휴양지 조성을 목적으로 개발되어, 경주지역의 역사적 특성을 살려 고대와 현대가 잘 어우러지도록 조성하였으며 전 지역이 온천지구 및 관광특구로 지정되어 있다. 고풍스럽고 은은한 맛을 풍기며 사계절 관광객이 이용할 수 있는 온천형 관광지로 우아하고 정취 있는 전통적 이미지가 창출될 수 있는 내륙형 종합관광휴양단지이며, 한국관광산업의 1번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자료출처 : http://guide.gyeongju.go.kr/deploy/

  • / 경주국립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은 신라 천년의 문화를 간직한 보고로서 많은 사랑과 깊은 관심과 성원을 받아왔다. 최근 박물관은 미술관 개관, 고고관 및 월지관 그리고 특별전시관을 새롭게 단장하여, 전시환경을 일신하였다. 지금까지 전시실 개선과 관람객 편의시설 등 하드웨어의 확충에 치중하였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박물관 운영 및 평생학습에 관련된 소프트웨어의 개발에 더욱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변화와 혁신의 시대를 맞이하여 전문적인 운영방안이 필요하며, 박물관의 정체성을 구현하기 위한 중장기 발전방안을 수립해야 할 시기이다. 신라문화의 보존·전시·조사·연구를 수행하는 핵심 문화센터로서 앞으로 다양한 기획전시와 국제교류사업 및 사회교육프로그램을 추진하여 동아시아의 중추적인 문화 복합기관으로 도약하고자 한다.

    자료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

  • / 경주버드파크(동궁원)
    우리나라 최초의 동·식물원이었던 동궁과 월지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경주동궁원은 접근성이 용이한 보문단지내에 소금강산과 명활산성을 사이에 두고 총면적 64,830㎡로 사계절 관광체험시설인 동궁식물원, 농업연구체험시설, 민간사업인 버드파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동궁식물원은 면적 2,883㎡ 규모의 신라시대 한옥 구조로 야자원, 화목원, 수생원 열대과원, 관엽원 등 5개 테마정원으로 나눠져 아열대 식물 400종 5,500본이 식재되어 있으며, 천마도상, 재매정, 안압지 등의 경주만의 소재를 활용해 신라의 정서를 느낄 수 있도록 조성하였습니다. 농업연구체험시설은 면적 14,000㎡의 유리온실, 하우스, 과수포장 등 농업연구 및 도농교류를 위한 체험의 장이 되도록 마련하였으며, 버드파크는 면적 5,000㎡의 새둥지 형태의 유선형태로 펭귄, 앵무새, 플라밍고 등 250종 900수가 전시되어, 단일 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의 선진국형 사계절 체험형 화조원입니다.

    자료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

  • / 경주 신무왕릉
    경주시 동방동 위치한 신라 제45대 신무왕의 능. 산기슭의 약간 경사진 지점을 이용하여 만든 원형의 토분(土墳)으로, 표식의물(表飾儀物)이 없다. 신무왕은 왕위쟁탈전이 심하던 때 청해진대사(淸海鎭大使) 장보고(張保皐)에게 옹립되어 민애왕(閔哀王)을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다. 면적 3만 6625㎡, 무덤지름 15m, 높이 3.4m.

    자료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

  • / 경주 서악동 마애여래삼존입상
    선도산 정상 가까이의 큰 암벽에 높이 7m나 되는 거구의 아미타여래입상을 본존불로 하여, 왼쪽에 관음보살상을, 오른쪽에 대세지보살상을 조각한 7세기 중엽의 삼존불상(三尊佛像)이다. 서방 극락세계를 다스린다는 의미를 지닌 아미타여래입상은 손상을 많이 입고 있는데, 머리는 완전히 없어졌고 얼굴도 눈있는 부분까지 파손되었다. 그러나 남아있는 뺨, 턱, 쫑긋한 입의 표현은 부처의 자비와 의지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넓은 어깨로부터 내려오는 웅장한 체구는 신체의 굴곡을 표현하지 않고 있어 원통형으로 보이지만, 여기에는 범할 수 없는 힘과 위엄이 넘치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묵직해 보이며, 앞면에 U자형의 무늬만 성글게 표현하였다. 중생을 구제한다는 자비의 관음보살은 내면의 법열(法悅)이 미소로 스며나오는 우아한 기풍을 엿보게 하는데, 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다룬 데 없는 맵시있는 솜씨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본존불에 비해 신체는 섬세하며 몸의 굴곡도 비교적 잘 나타나 있다. 중생의 어리석음을 없애준다는 대세지보살은 얼굴과 손의 모양만 다를 뿐 모든 면에서 관음보살과 동일하다. 사각형의 얼굴에 눈을 바로 뜨고 있어서 남성적인 힘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 이 삼존불은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 불상조각으로 이어지는 과도기의 중요한 작품으로, 본존불은 높이 7m, 관음보살상 높이 4.55m, 대세지보살 높이 4.62m이다.

    자료출처 : http://www.heritage.go.kr

  • / 경주 서악동 고분군
    사적 제142호. 면적 1,930제곱미터. 무열왕릉의 뒤쪽 경사면에 상하 일렬로 정렬한 4기의 봉토분(封土墳)으로 봉토의 크기는 저경(底徑) 40m 정도, 높이 25m 정도이다. 이들 고분은 경주시 남부의 평지묘(平地墓)와는 달리 산의 경사면에 있어, 충효리(忠孝里) 고분과 마찬가지로 통일기의 남향석실묘(南向石室墓)로 추정된다. 무열왕릉과의 입지관계로 보아 왕이나 왕족의 분묘로 생각된다. 서악리고분은 민족항일기에 1기가 조사되어 서악리석침총(西岳里石枕塚)의 이름으로 보고되었지만, 간단한 도면과 사진만「조선고적도보」 제3권에 게재되었을뿐 그 뒤 1964년 국립박물관에 의해 돌방무덤 1기가 더 조사, 이때 발굴된 서악리돌방무덤은 동서2.65m, 남북2.7m의 방형에 가까운 돌방의 중앙에 너비 1.5m, 높이1.25m, 길이1.6m 크기의 널길이 나 있다.

    자료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

  • / 주상절리
    읍천항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코스를 택하면 왼쪽에 바다를 끼고 출렁다리, 부채꼴 주상절리, 위로 솟은 주상절리, 누워 있는 주상절리, 기울어진 주상절리를 차례로 만난다. 천연기념물 536호로 지정된 경주 양남 주상절리군이 파도소리길의 주인공이다. 오랫동안 군부대의 해안 작전지역이었기에 공개되지 못하다가 2009년 군부대가 철수하고 산책로가 조성되면서 그 기기묘묘한 모습을 드러냈다. 경주의 동해안은 신생대 말 현무암질용암이 광범위하게 분출한 지역이다. 뜨거운 용암이 빠르게 식으면서 만들어지는 다각형 기둥(주상절리)은 수직으로 발달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곳 양남 주상절리는 기울어지거나 수평으로 누워 있거나 부채꼴 등 독특한 모양이다. 압권은 부채꼴 주상절리로 국내에서 처음 발견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사방으로 펼쳐진 모습이 곱게 핀 한 송이 해국처럼 보인다 해서 ‘동해의 꽃’이라고 불린다.

    자료출처 : http://korean.visitkorea.or.kr